1839년 이후 사진의 산업화와 발전
페츠발(1807-1891년)

가레오 타입이 발표될 때 오스트리아의 안드레아 폰 에팅스하우젠(Andreas Von Ettingshausen)교수는 다게레오의 사진기의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렌즈가 너무 아두운 것이었다.(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f/1 7정도) 폰 에팅스하우젠 교수는 비엔나 대학 수학 교수인 그의 동료 요셉 막스 페츠발(Josef Max Petzval)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페츠발을 유명한 광학회사 가족인 피터 폰 보이흐트랜드(Peter Von Voigtlander)를 소개시켜 주었다.

보이흐트랜드

츠발은 거의 1년 걸려서 새 렌즈를 설계하였고 그 결과는 3군4매 구성으로 149mm에 밝기는 f/3.7로 다게레오 카메라의 16배 밝기였다. 포이흐트랜더는 그 렌즈를 위해서 카메라를 특별히 만들었다. 이 렌즈로 만든 켄논(Cannon)카메라는 포이흐트랜더사에서 수천대 제작되었고 미국에서도 모조품을 수천대 만들었었다. 페츠발의 이 렌즈는 이후 60년동안 렌즈의 표준이 되었고 이 렌즈를 독일렌즈(German Lens)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페츠발은 이익 배분 문제로 포이흐트랜더와 갈라서게 되고, 비록 후에 사진의 원조중의 한 사람으로 대접하게 되었으나 그때 그는 렌즈의 표준만 만들고 사진계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사진'이라고 부르는 공식적인 시작
다게레오타입(Daguerreo Type):프랑스 다게르(Lonis Jacque Mande Daguerre)
칼로타입(Calo Type):영국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

의 두 가지 사진 제작 방법이 공식화 되었고 두 방법들은 예술적인 솜씨나 특별한 기능 훈련 없이도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사진을 만들수 있는 방법이다. 1839년 시판 이후 카메라는 인쇄술과 의료, 과학 분야와 산업화 전반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계속 발전을 거듭하여 왔으며 각국의 카메라의 전성기는 1840~1880년대는 프랑스, 1880-1920년은 영국, 1920~1960년은 독일, 1960~2000년은 일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술(Photography)의 어원

늘날과 같은 의미의 '포토그래피(Photography)'나 '포토그래픽(Photographic)'이라는 말은 1839년 허셀(Herschel)에 의해 영국 학사원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사진술의 의미로 사용되어오던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x Drawing)'등은 그 후 자연스럽게 '포토그래피'라는 용어로 대체되게 되었다.

러한 '포토그래피'라는 용어는 본래 그리스어의 '빛'이라는 포스(Phos)와 '그린다'라는 의미의 그라포스(Graphos)의 합성어로 '빛으로 그린다' 즉 광화(光畵)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포토그래피'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사물의 형태를 정확하게 사생(寫生)한다는 의미와 사실 그대로를 베껴(찍어)낸다는 의미로 '사진(寫眞)'이라고 전달되어,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사진술','사진'이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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